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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대 반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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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마간다통신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14-12-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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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새 정부의 고위직 선거가 실시되었다. 후크단은 이 선거에 참여해 그들의 지도자 루이스 을 하원의원에 당선시켰다. 그러나 몇몇 후크단 후보들과 함께 집권당이 된 자유당이 당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크단은 밀림지역으로 후퇴하여 오랜 저항운동에 착수했다. 독립 직후 필리핀 대통령 마누엘 록사스는 후크단에 대한 ‘무력정책’을 천명했다. 그러나 정부군의 사기는 매우 저조했으며 정부군이 주민들에 대해 무차별 보복을 가함에 따라 후크단의 입지가 강화되어갔다. 이후 4년 동안 마닐라 정부는 서서히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가는 반면 후크단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1950년에 이르러 후크단 유격대들은 마닐라 근교로 접근했으며 공산주의자 지도자들은 권력쟁취를 위한 적기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마닐라에 있던 그들의 지하본부가 정부관리들의 습격을 받아 후크단은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고, 정치 지도부 전체가 하룻밤 만에 체포되었다. 동시에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고하고 마닐라 정부에 다량의 군수물자를 지원할 것을 허가함으로써 후크단은 다시 한번 타격을 입었다. 후크단이 패배하게 된 또다른 요인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라몬 막사이사이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1953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중들은 마닐라 정부를 지지하게 되었다. 1954년 후크단 지도자 타룩은 밀림에서 나와 항복했으며 후크발라하프 반란은 사실상 끝을 맺었다. 그러나 후크단 운동과 그 지도력은 주로 팜팡가 지방(루손 섬)을 거점으로 해서 지속되었다.

이후의 필리핀 행정부가 오랜 기간 약속했던 토지개혁을 실행할 수 없게 되자, 후크단은 여러 개의 분파로 나뉘고 어떤 지역에서는 새로운 폭동집단과 통합되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1970년대까지도 적극적인 반정부조직으로 남아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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